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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한국사

한국사 연표

구석기 → 고조선·여러 나라 → 삼국·남북국 → 고려 → 조선 → 개항기 → 일제 강점기 → 현대. 나란히 보기를 켜면 삼국·남북국 구간이 나라별로 갈라져 같은 시대를 가로로 비교할 수 있어요. 별(★)은 최빈출.

주제
약 70만 년 전사회

구석기 시대 시작

뗀석기(주먹도끼·찍개)를 만들어 사냥·채집을 하고, 동굴·막집에서 이동 생활을 했다. 무리 사회의 평등 사회였다.

기원전 6000년경사회

신석기 혁명 — 농경·정착 시작

간석기·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며 밭농사와 목축을 시작하고, 강가·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했다. 다만 아직 계급은 없는 평등 사회였다.

기원전 2333년건국

고조선 건국 (단군왕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진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가.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사회의 지배자를 뜻한다. 『삼국유사』에 건국 이야기가 전한다.

기원전 (청동기)사회

8조법 시행

고조선의 사회 질서를 보여주는 관습법. 현재 3개 조항만 전한다 — 살인(사형), 상해(곡물 배상), 절도(노비화·50만 전). 생명·노동력·사유재산·계급 사회를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경경제

철기 문화의 보급

철제 농기구·무기가 보급되어 농업 생산력과 정복 전쟁이 늘었다. 세형동검·잔무늬거울(독자적 청동기), 명도전·반량전(중국과 교류), 다호리의 붓(한자 사용)이 나타난다.

기원전 194년정치

위만 조선 성립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됨. 철기 문화를 본격 수용하고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

기원전 108년멸망

고조선 멸망 · 한 군현 설치

한 무제의 공격으로 고조선 멸망. 한은 낙랑 등 군현을 설치했다(→ 이후 고구려 미천왕이 낙랑 축출).

기원 전후정치

여러 나라의 성장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초기 국가들이 등장했다. 제천행사(영고·동맹·무천), 순장·서옥제·민며느리제·책화·소도 등 독특한 풍속이 전한다. (자세한 비교는 '나라 비교'의 여러 나라 탭)

기원전 57년건국👑 박혁거세

신라 건국 (박혁거세)

경주 사로국에서 시작. 박·석·김 3성이 번갈아 왕위를 이었다.

기원전 37년건국👑 동명성왕(주몽)

고구려 건국 (주몽)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동명성왕)이 졸본에 건국. 산악 지대라 정복 활동에 주력.

기원전 18년건국👑 온조왕

백제 건국 (온조)

고구려 계통의 온조가 한강 유역 위례성에 건국. 농경과 해상 교류에 유리했다.

42년건국👑 김수로왕

금관가야 건국 (김수로)

김수로가 김해 지역에 금관가야를 세워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다. 낙동강 하류의 철 생산과 해상 교역으로 번성했다.

194년경제👑 고국천왕

고국천왕, 진대법 실시

재상 을파소의 건의로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빈민 구제책. 왕위 부자 상속과 5부의 행정적 개편도 이루어졌다.

3세기 중엽정치👑 고이왕

고이왕, 관등제 정비

6좌평과 16관등을 두고 관리의 공복(관복) 색을 정하는 등 중앙 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313년대외관계👑 미천왕

미천왕, 낙랑군 축출

낙랑군을 몰아내 대동강 유역을 확보하고, 서안평을 점령해 중국 세력을 한반도에서 밀어냈다.

4세기 후반정치👑 내물왕

내물왕, 마립간 칭호·김씨 세습

김씨의 왕위 세습을 확립하고 대군장을 뜻하는 '마립간' 칭호를 사용했다. 고구려(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

371년정치👑 근초고왕

근초고왕, 고구려 평양성 공격

백제 전성기. 마한 정복, 고구려 고국원왕 전사시킴, 요서·산둥·규슈 진출설, 왜에 칠지도 하사. 부자 상속 확립.

372년정치👑 소수림왕

소수림왕, 불교 수용·태학 설립·율령 반포

고국원왕 전사 후 체제 정비. 불교 공인, 태학(교육), 율령 반포로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384년문화👑 침류왕

백제 불교 수용 (침류왕)

동진의 마라난타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사상적 통합을 꾀했다.

391~412년대외관계👑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만주·요동 대부분 장악, 백제 공격, 신라에 침입한 왜 격퇴(호우명 그릇). '영락' 연호 사용.

427년정치👑 장수왕

장수왕, 평양 천도

적극적 남진 정책의 신호탄. 이에 백제·신라가 나제 동맹(433)으로 맞섰다.

433년대외관계👑 비유왕

나제 동맹 체결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에 맞서 백제(비유왕)와 신라(눌지왕)가 맺은 동맹. 120여 년간 이어지다 진흥왕의 한강 점령으로 결렬됐다.

475년대외관계👑 장수왕

장수왕, 한성 함락 → 백제 웅진 천도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완전 장악. 백제 개로왕 전사,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 광개토대왕릉비·충주 고구려비 건립.

501~523년정치👑 무령왕

무령왕, 22담로 설치

지방에 왕족을 파견(22담로)해 통제 강화. 중국 남조(양)와 교류 → 무령왕릉(벽돌무덤)이 대표 유물.

지증왕(500~514)정치👑 지증왕

지증왕, 국호 '신라'·왕호 '왕' 사용

국호를 신라로 확정, '마립간' 대신 '왕' 호칭 사용. 우경 보급,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 정복.

512년대외관계👑 지증왕

우산국 복속 (이사부)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지증왕은 우경 보급·순장 금지 등 개혁도 추진했다.

법흥왕(514~540)정치👑 법흥왕

법흥왕, 율령 반포·불교 공인·금관가야 병합

율령 반포, 병부 설치, 골품제 정비, 이차돈 순교로 불교 공인, '건원' 연호 사용, 금관가야 병합(532).

527년문화👑 법흥왕

이차돈 순교 → 불교 공인

귀족의 반대로 늦어지던 신라 불교가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국가 종교로 공인됐다(법흥왕).

538년정치👑 성왕

성왕, 사비 천도 · 국호 남부여

사비(부여)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침. 중앙 22부·수도 5부·지방 5방 정비, 일본에 불교 전파.

진흥왕(540~576)대외관계👑 진흥왕

진흥왕, 한강 유역 차지 · 순수비

나제 동맹을 깨고 한강 하류 장악(553) →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 전사(554). 대가야 정복(562), 화랑도 개편, 단양 신라 적성비·4개 순수비 건립.

554년대외관계👑 위덕왕

관산성 전투 — 성왕 전사

한강을 진흥왕에게 빼앗긴 백제 성왕이 신라를 공격했다가 관산성에서 전사. 나제 동맹은 완전히 깨지고 백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562년멸망👑 김수로왕

대가야 멸망 (가야 연맹 소멸)

전기 금관가야(김해)→후기 대가야(고령) 중심의 연맹은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신라에 병합됐다. 철기·토기 문화가 발달했다.

600년경문화👑 진평왕

원광의 세속 오계

원광이 화랑도의 실천 규범으로 세속 오계를 제시했다.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의 다섯 계율이다.

612년대외관계👑 영양왕

살수 대첩 (을지문덕)

수 양제의 대군을 을지문덕이 살수(청천강)에서 대파. 수 멸망의 한 원인이 됐다.

645년대외관계👑 보장왕

안시성 싸움 (당 태종 격퇴)

연개소문 집권 후 당 태종의 침입을 안시성에서 물리침. 앞서 천리장성 축조로 대비했다.

648년대외관계👑 진덕여왕

나당 동맹 체결

김춘추가 당과 군사 동맹을 맺어 백제·고구려 협공을 준비했다.

660년멸망👑 의자왕

백제 멸망 (황산벌 전투)

계백의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김유신에게 패하고 사비성 함락. 이후 백제 부흥 운동(복신·도침·흑치상지)이 일어났다.

660~663년정치👑 의자왕

백제 부흥 운동

복신·도침(주류성)과 흑치상지(임존성)가 왕자 풍을 왕으로 세우고 저항. 왜의 지원군이 백강 전투(663)에서 나당 연합군에 패하며 실패했다.

668년멸망👑 보장왕

고구려 멸망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 분열로 나당 연합군에 멸망. 이후 검모잠·안승 등의 부흥 운동이 있었다.

670년경정치👑 보장왕

고구려 부흥 운동

검모잠·고연무가 안승을 왕으로 추대해 저항했다. 신라는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삼아 당을 견제하는 데 이용했다.

7세기 후반문화👑 문무왕

불교 사상의 발전 (원효·의상)

원효는 화쟁 사상과 아미타 신앙으로 불교를 대중화했고, 의상은 화엄종을 열어 부석사를 세우고 관음 신앙을 폈다. 통일 후 사상 통합에 기여했다.

676년정치👑 문무왕

나당 전쟁 승리 · 삼국 통일 완성 (문무왕)

매소성·기벌포 전투에서 당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 완성. 대동강~원산만 이남 확보. 외세 이용·불완전 통일의 한계가 있으나 자주적 통일의 의의가 있다.

신문왕(681~692)정치👑 신문왕

신문왕, 왕권 강화 개혁

김흠돌의 난 진압 → 9주 5소경 정비, 9서당 10정, 국학 설치, 관료전 지급·녹읍 폐지로 귀족 경제 기반 약화(왕권 강화).

687년경제👑 신문왕

관료전 지급·녹읍 폐지 (신문왕)

신문왕이 관료전을 지급하고(687) 이어 녹읍을 폐지하여(689)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했다.

698년건국👑 고왕(대조영)

발해 건국 (대조영)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건국.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며 남북국 시대가 열렸다.

무왕(719~737)대외관계👑 무왕(대무예)

발해 무왕, 영토 확장 (연호 인안)

장문휴가 당의 산둥(등주)을 공격. 돌궐·일본과 연결해 당·신라를 견제했다.

722년경제👑 성덕왕

정전 지급 (성덕왕)

성덕왕이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하여 토지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조세 수취 기반을 넓혔다.

8세기 전반문화👑 성덕왕

혜초, 『왕오천축국전』 저술

승려 혜초가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기행문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당시 인도·서역의 풍습을 전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문왕(737~793)정치👑 문왕(대흠무)

발해 문왕, 체제 정비 (연호 대흥)

당과 친선, 3성 6부 정비, 상경으로 천도, 신라도 개설. 주자감(교육) 설치.

8세기경제👑 경덕왕

신라 촌락 문서 (민정 문서)

촌주가 3년마다 인구·토지·가축·나무 수 등을 조사해 기록한 문서로, 조세·역 수취의 근거였다.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에서 발견되었다.

8세기정치👑 문왕(대흠무)

발해 상경 천도 (문왕)

문왕이 도읍을 상경 용천부로 옮기고 당의 문물을 수용해 3성 6부의 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상경성은 당 장안성을 본떠 조성되었다.

757년경제👑 경덕왕

녹읍 부활 (경덕왕)

경덕왕 때 진골 귀족의 반발로 녹읍이 부활하였다. 이는 왕권 약화와 귀족 세력 강화의 흐름을 보여준다.

8세기 후반~사회👑 혜공왕

신라 하대의 혼란

혜공왕 피살 후 진골 귀족의 왕위 쟁탈전, 김헌창의 난, 장보고(청해진)의 활동, 6두품·호족·선종·풍수지리설 대두 → 후삼국 분열로 이어진다.

788년정치👑 원성왕

독서삼품과 실시 (원성왕)

국학 학생을 유교 경전 이해 수준에 따라 상·중·하로 나눠 관리로 채용하려 한 제도. 골품제의 한계로 큰 성과는 없었으나 유학을 보급했다.

선왕(818~830)정치👑 선왕(대인수)

발해 전성기 '해동성국' (선왕)

최대 영토 확보, 5경 15부 62주 정비. 중국이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 불렀다.

822년정치👑 헌덕왕

김헌창의 난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국호를 '장안'이라 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 하대 진골 귀족 분열을 보여준다.

828년경제👑 흥덕왕

장보고, 청해진 설치

완도에 청해진을 세워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 무역을 장악했다. 이후 중앙 정치에 개입하다 피살됐다.

9세기문화👑 흥덕왕

선종·풍수지리설의 유행

경전보다 참선을 중시하는 선종(9산 선문)과 도선이 들여온 풍수지리설이 유행했다. 이는 지방 호족·6두품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신라 하대의 사회 변동을 이끌었다.

889년사회👑 진성여왕

원종·애노의 난

진성 여왕 때 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과중한 조세에 반발해 봉기했다. 신라 하대 농민 봉기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다.

9세기 말정치👑 진성여왕

최치원, 시무 10여 조 건의

당 빈공과에 급제한 6두품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시무 10여 조)을 올렸으나 골품제의 벽에 막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6두품의 한계를 보여준다.

900년건국

후백제 건국 (견훤)

견훤이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세웠다. 옛 백제 지역을 기반으로 군사력이 강했다.

901년건국

후고구려 건국 (궁예)

궁예가 송악(개성)에 도읍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뒤에 국호를 마진·태봉으로 고침). 신라·후백제와 함께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918년건국👑 태조 왕건

고려 건국 (왕건)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송악(개성)에 도읍하고 고려를 세웠다.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북진 정책을 폈다.

926년멸망👑 대인선(애왕)

발해 멸망 (거란)

거란(요)의 침입으로 멸망. 이후 발해 유민 상당수가 고려로 넘어와 흡수되었다.

936년정치👑 태조 왕건

후삼국 통일

왕건이 신라의 항복(935)을 받고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 신검을 물리쳐 후삼국을 통일했다. 발해 유민도 포용했다.

광종(949~975)정치👑 광종

광종의 왕권 강화 (노비안검법·과거제)

노비안검법(956)으로 호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958)를 도입했다. 공복 제정, '광덕·준풍' 연호 사용으로 황제국 위상을 드러냈다.

976년경제👑 경종

시정 전시과 실시 (경종)

경종 때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는 전시과를 처음 마련했다. 관품과 인품을 함께 고려하여 지급하였다.

성종(981~997)정치👑 성종

성종, 최승로 시무 28조 수용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확립했다. 2성 6부 정비, 12목에 지방관 파견, 국자감 정비, 향리 제도 마련.

993년대외관계👑 성종

서희의 외교 담판 (거란 1차 침입)

거란(요)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해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고 강동 6주를 확보했다.

996년경제👑 성종

건원중보 주조 (성종)

성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를 주조했다. 그러나 유통은 부진하여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998년경제👑 목종

개정 전시과 (목종)

목종 때 인품을 배제하고 오직 관직의 높낮이(18과)만을 기준으로 전시과를 개정하였다.

11세기문화👑 현종

초조대장경 조판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초조대장경을 조판하기 시작했다. 이는 몽골의 침입 때 소실되었다.

1019년대외관계👑 현종

귀주 대첩 (강감찬, 거란 3차 침입)

거란의 3차 침입을 강감찬이 귀주에서 크게 물리쳤다. 이후 개경에 나성을 쌓고 국경에 천리장성을 축조했다.

1033~1044년대외관계👑 덕종

천리장성 축조

거란·여진의 침입에 대비해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았다. 강감찬의 건의로 시작되었다.

고려 시대경제👑 문종

벽란도 국제 무역항 번성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고려의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해 송·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이때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

1076년경제👑 문종

경정 전시과 (문종)

문종 때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도록 전시과를 다시 정비했다. 지급 대상이 줄고 무반 대우가 개선되었다.

1097년문화👑 숙종

의천의 천태종 개창

대각국사 의천이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열어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려 했다. 교관겸수를 주장했다.

1101년경제👑 숙종

활구(은병) 발행 (숙종)

숙종 때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두고 활구(은병)·해동통보·삼한통보 등을 발행했다. 은병은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만든 고액 화폐이다.

1107년대외관계👑 예종

윤관의 여진 정벌 · 동북 9성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을 편성하고,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해 동북 9성을 쌓았다(뒤에 반환).

1126년정치👑 인종

이자겸의 난

인종의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권력을 장악하려다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문벌 귀족 사회의 동요를 보여준다.

1135년정치👑 인종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묘청 등 서경 세력이 서경 천도·칭제 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다 반란을 일으켜 대위국을 세웠으나 김부식에게 진압됐다.

1145년문화👑 인종

삼국사기 편찬 (김부식)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이 편찬한 현존 최고(最古)의 역사서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유교적·합리적 사관에 입각해 신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1170년정치👑 명종

무신정변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은 정중부·이의방 등 무신이 보현원에서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 이후 100년간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1196년정치👑 명종

최충헌 집권 (최씨 무신 정권)

이의민을 제거한 최충헌이 교정도감을 세워 권력을 장악, 4대 60여 년간 최씨 무신 정권이 이어졌다. 봉사 10조를 올렸다.

1198년사회👑 신종

만적의 난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개경에서 신분 해방을 외치며 봉기를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다. 무신 집권기 하층민 봉기를 대표한다.

13세기 초문화👑 희종

지눌의 수선사 결사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수선사)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 운동을 벌이며 조계종을 확립했다.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를 내세웠다.

1231년대외관계👑 고종

몽골 침입 · 강화 천도 (대몽 항쟁)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자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1232)해 항전했다. 김윤후의 처인성·충주성 승리, 팔만대장경 조판(호국 불교)이 있었다.

1236~1251년문화👑 고종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조판

몽골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염원으로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새겼다. 현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다.

1270~1273년대외관계👑 원종

삼별초 항쟁

개경 환도(1270)에 반발한 삼별초가 강화도→진도(배중손)→제주도(김통정)로 옮겨가며 대몽 항쟁을 이어갔으나 여몽 연합군에 진압됐다.

13세기 말~14세기대외관계👑 충렬왕

원 간섭기

두 차례 일본 원정 동원, 정동행성 설치, 관제 격하(왕실 용어), 다루가치 파견, 공녀·응방 등 수탈. 권문세족이 성장하고 몽골풍이 유행했다.

13세기 말문화👑 충렬왕

삼국유사 편찬 (일연)

충렬왕 때 승려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로,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불교 설화와 향가 등이 실려 있다.

공민왕(1351~1374)정치👑 공민왕

공민왕의 반원 자주 개혁

쌍성총관부 수복, 친원파(기철)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몽골풍 금지,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신돈) 설치로 개혁을 추진했다.

14세기대외관계👑 공민왕

홍건적의 침입

공민왕 때 홍건적이 두 차례(1359·1361) 침입해 한때 개경이 함락되고 왕이 안동으로 피란했다. 이후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했다.

1366년사회👑 공민왕

전민변정도감 설치 (신돈)

공민왕이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1377년문화👑 우왕

직지심체요절 간행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 인쇄본이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380년대외관계👑 우왕

진포·황산 대첩 (왜구 격퇴)

최무선이 화포로 진포에서 왜구 선박을 격침하고,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화통도감 설치로 화약 무기가 실전에 쓰였다.

1388년정치👑 창왕

위화도 회군 (이성계)

우왕·최영의 요동 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조선 건국의 발판이 됐다.

1391년경제👑 공양왕

과전법 시행

신진 사대부가 권문세족의 대토지를 개혁하고자 과전법을 시행, 관리에게 경기 지역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했다. 조선 건국의 경제적 기반이 됐다.

1392년멸망👑 공양왕

고려 멸망 · 조선 건국

정몽주 등 온건파를 제거한 이성계가 공양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조선을 건국했다. 474년 고려 왕조가 막을 내렸다.

1392년건국👑 태조 이성계

조선 건국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은 뒤 조선을 건국하고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다.

1394년정치👑 태조 이성계

한양 천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경복궁·종묘·사직을 세워 새 왕조의 기틀을 잡았다.

1398년정치👑 정종

왕자의 난

왕위 계승을 둘러싼 두 차례의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제거되고, 이방원이 실권을 잡아 태종으로 즉위했다.

세종 대(1433~1443)대외관계👑 세종

4군 6진 개척

세종이 최윤덕·김종서를 보내 여진을 몰아내고 압록강·두만강 유역에 4군 6진을 설치했다. 오늘날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1443년 창제 / 1446년 반포문화👑 세종

훈민정음 반포

세종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우리 고유 문자를 반포했다. 집현전 학자들이 해례본을 지어 원리를 설명했다.

1453년정치👑 단종

계유정난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로 즉위했다.

1485년정치👑 성종

경국대전 완성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 성종 때 완성·반포한 조선의 기본 법전. 유교적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1498~1545년정치👑 연산군

4대 사화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로 훈구파와 사림파가 충돌했다. 사림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서원·향약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1510년대외관계👑 중종

삼포왜란

부산포·제포·염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일으킨 난. 이를 계기로 임시 군사 기구인 비변사가 처음 설치되었다.

1555년대외관계👑 명종

을묘왜변

왜구가 전라도 해안을 크게 침입한 사건. 이를 계기로 비변사가 상설 기구가 되었다.

1592년대외관계👑 선조

임진왜란

일본의 침입으로 시작된 7년 전쟁. 이순신의 수군과 곽재우 등 의병의 활약, 명의 참전으로 극복했다(정유재란 1597).

1608년(경기) ~ 1708년(전국)경제👑 광해군

대동법 실시

방납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쌀·베·동전으로 걷도록 바꾼 제도. 광해군 때 경기에서 시작해 숙종 때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공인이 등장했다.

1623년정치👑 인조

인조반정

광해군의 중립 외교와 폐모살제를 명분으로 서인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세웠다. 이후 친명배금 정책을 폈다.

1627년대외관계👑 인조

정묘호란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에 반발한 후금이 침입했다.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1636년대외관계👑 인조

병자호란

청의 침입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했다(삼전도의 굴욕). 이후 북벌론이 대두했다.

조선 후기경제👑 효종

이앙법(모내기법) 확산

조선 후기 이앙법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노동력 절감과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광작이 나타나 농민층이 분화되었다.

1659년 · 1674년정치👑 현종

예송 논쟁

효종과 효종비의 상에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을지를 두고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 대립했다. 붕당 정치가 예학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1678년경제👑 숙종

상평통보 전국 유통 (숙종)

숙종 때 상평통보가 법정 화폐로 전국에 유통되었다. 상공업 발달로 화폐 사용이 늘었으나, 지주·부호가 화폐를 쌓아 전황이 나타나기도 했다.

1680~1694년정치👑 숙종

환국 정치

숙종 때 경신·기사·갑술환국으로 집권 붕당이 급격히 교체되며 붕당 간 대립이 극심해졌다.

1724~1776년정치👑 영조

영조의 탕평과 균역법

영조가 탕평책으로 붕당 폐단을 억누르고, 균역법으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백성 부담을 덜었다.

1776~1800년정치👑 정조

정조의 개혁

규장각·초계문신제로 인재를 기르고 장용영을 두었으며, 수원 화성을 쌓고 신해통공으로 상업을 진흥했다.

1800~1863년정치👑 순조

세도 정치

순조~철종 대 안동 김씨 등 외척이 권력을 독점했다. 매관매직과 삼정의 문란으로 홍경래의 난(1811)·임술 농민 봉기(1862)가 일어났다.

1811년사회👑 순조

홍경래의 난

세도 정치의 수탈과 평안도(서북) 지역 차별에 반발해 홍경래가 일으킨 봉기.

1862년사회👑 철종

임술 농민 봉기

삼정의 문란에 항거해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농민 봉기. 정부는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으나 실효는 없었다.

1863~1873년정치👑 고종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세도 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비변사 축소·의정부 부활, 경복궁 중건(당백전 발행·원납전 징수로 원성), 서원 철폐(47곳만 존치), 호포제·사창제로 민생을 안정시켰다. 대외적으로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다.

1866년대외관계👑 고종

병인양요

병인박해(천주교 탄압)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했다. 한성근(문수산성)·양헌수(정족산성) 부대가 격퇴했으나, 프랑스군이 물러가며 외규장각의 의궤 등 도서를 약탈해 갔다.

1871년대외관계👑 고종

신미양요 · 척화비 건립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을 구실로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했다.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했다. 두 차례 양요를 겪은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밝혔다.

1876년대외관계👑 고종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

일본이 운요호 사건(1875)을 빌미로 개항을 강요해, 조선은 최초의 근대적·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맺었다. 부산·원산·인천 3항 개항,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영사 재판권)을 허용해 주권을 침해당했다.

1882년정치👑 고종

임오군란

신식 군대(별기군) 우대와 개화 정책에 대한 구식 군인의 불만이 폭발해 일어난 군란. 청군이 개입해 대원군을 납치하고 내정 간섭을 강화했다. 일본과는 제물포 조약, 청과는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맺었다.

1884년정치👑 고종

갑신정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일으킨 정변. 청과의 사대 관계 폐지·인민 평등 등 14개조 정강을 내세웠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다. 이후 청·일은 톈진 조약을 맺었다.

1894년사회👑 고종

동학 농민 운동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군이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봉기했다. 황토현 전투 승리 후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해 폐정 개혁을 추진했으나, 일본군 개입에 맞선 2차 봉기가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며 실패했다.

1894~1895년정치👑 고종

갑오개혁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추진된 근대적 개혁. 신분제·과거제·연좌제 폐지, 공사 노비제 혁파, 조혼 금지, 도량형 통일, 재정의 탁지아문 일원화, 은 본위 화폐 제도 등을 단행했다. 개혁의 자주성 한계는 있으나 근대화의 토대가 되었다.

1895년정치👑 고종

을미사변 · 을미개혁

삼국 간섭 후 친러 성향을 보이자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어 을미개혁으로 단발령 시행, 태양력 채택, '건양' 연호 사용이 이루어졌다.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반발해 유생 중심의 을미의병이 일어났다.

1896년정치👑 고종

아관파천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약 1년간). 이 시기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이권 침탈(광산·삼림·철도)이 심해졌다. 국왕의 궁궐 밖 피신은 국가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렸다.

1896~1898년사회👑 고종

독립협회 · 만민공동회

서재필 등이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독립신문·독립문을 세웠다. 만민공동회·관민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고 헌의 6조를 채택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모함으로 황국협회에 의해 해산되었다.

1897년정치👑 고종 황제

대한제국 수립 · 광무개혁

환궁한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했다(연호 '광무').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작한다'는 구본신참에 따라 대한국 국제 반포,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 상공업·근대 시설 육성을 추진했다.

1905년대외관계👑 고종 황제

을사늑약 (제2차 한일 협약)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했다(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고종은 조약 무효를 주장했고, 민영환의 자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을사의병(최익현·신돌석)이 일어났다.

1907년대외관계👑 순종 황제

헤이그 특사 파견 · 고종 강제 퇴위

고종이 이준·이상설·이위종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으며,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강요했다.

1907년정치👑 순종 황제

군대 해산 · 정미의병

한일 신협약의 부수 각서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 군인이 합류하면서 의병이 전투력을 갖춘 정미의병으로 발전했다. 이인영·허위를 중심으로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서울 진공 작전을 폈으나 실패했다.

1909년대외관계👑 순종 황제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처단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체포된 뒤 뤼순 감옥에서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 밝히며 동양 평화론을 주장하다 순국했다. 같은 해 기유각서로 사법권도 박탈당했다.

1910년멸망👑 순종 황제

국권 피탈 (한일 병합)

일제가 한일 병합 조약(경술국치)을 강제해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빼앗았다. 통감부를 대신해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500여 년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이 막을 내렸다.

1910년대정치

무단 통치 · 토지 조사 사업

1910년대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가 시행되었다(헌병 경찰제, 조선 태형령, 관리·교원의 제복·착검). 토지 조사 사업(1912~1918)은 기한부 신고제로 진행되어 미신고 토지를 총독부가 차지하고 농민의 관습적 경작권을 부정했다.

1919년사회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독립 선언과 함께 전국·전 계층·국외로 확산된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 일제의 무단 통치가 문화 통치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조직적 독립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1919년정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3·1 운동을 계기로 여러 임시정부가 통합되어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삼권 분립에 기초한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로, 연통제·교통국을 운영하고 독립 공채 발행, 구미 위원부 설치, 독립신문 발간을 했다.

1920년대정치

문화 통치 (민족 분열 통치)

3·1 운동 이후 일제가 내세운 이른바 문화 통치. 보통 경찰제 전환(실제 경찰 수 증가), 조선일보·동아일보 발간 허용, 치안 유지법(1925) 제정으로 친일파를 양성하고 민족을 분열시키려는 기만적 정책이었다.

1920년대외관계

봉오동 · 청산리 대첩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이 봉오동에서,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 연합 부대가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간도 참변을 일으켰고, 독립군은 자유시로 이동했다(자유시 참변).

1920년대경제

물산 장려 운동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시작한 국산품 애용·자급자족 운동.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세웠다. 같은 시기 실력 양성 운동으로 민립 대학 설립 운동도 전개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1926년사회

6·10 만세 운동

순종의 인산일(장례일)을 기해 학생과 사회주의 계열이 준비한 만세 시위.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세력이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족 유일당 운동의 계기가 되어 신간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1927년사회

신간회 결성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해 만든 국내 최대의 합법적 민족 운동 단체(민족 유일당). 전국에 지회를 두고 강연·계몽 활동을 폈으며,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했다. 자매단체로 근우회가 있었다.

1929년사회

광주 학생 항일 운동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 충돌을 계기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학생 운동으로,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운동이었다.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해 지원했으며 민족 차별과 식민지 교육에 항거했다.

1932년대외관계

이봉창 · 윤봉길 의거 (한인 애국단)

김구가 침체된 임시정부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의거. 이봉창은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고, 윤봉길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요인을 처단했다. 이는 중국 국민당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0~40년대정치

민족 말살 통치 · 창씨개명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기에 일제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없애려 한 통치. 내선일체·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황국 신민 서사 암송, 신사 참배, 창씨개명, 우리말·우리 역사 교육 금지를 강요하고, 국가 총동원법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했다.

1940년대외관계

한국광복군 창설

충칭으로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규 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총사령관 지청천). 대일 선전 포고 후 연합군과 함께 인도·미얀마 전선에 참전하고,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으나 광복으로 실행되지 못했다.

1945년 8월 15일정치

8·15 광복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한국이 35년간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았다. 이는 연합국의 승리와 함께, 국내외에서 이어진 우리 민족의 끈질긴 독립운동이 함께 이룬 결과였다.

1945년정치

광복과 38선 분단

광복 직후 미·소 양군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에 진주해 남과 북에 각각 군정을 실시했다. 여운형의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활동이 있었으나, 미·소의 분할 점령으로 분단의 씨앗이 뿌려졌다.

1945년 12월정치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미·영·소 외상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해 임시 민주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간의 신탁 통치를 결정했다. 신탁 통치를 둘러싸고 좌우가 찬탁·반탁으로 격렬히 대립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1948년건국🎖️ 이승만 대통령

5·10 총선거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유엔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적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제헌 국회가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북한은 9월 정권 수립).

1950~1953년대외관계🎖️ 이승만 대통령

6·25 전쟁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 낙동강 방어선 → 인천 상륙 작전으로 반격 → 중국군 개입에 따른 1·4 후퇴를 거쳐 38선 부근에서 전선이 고착되었다. 1953년 정전 협정으로 휴전했으며, 민족 전체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남겼다.

1960년정치🎖️ 이승만 대통령

4·19 혁명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해 학생과 시민이 일으킨 민주 혁명. 김주열 학생의 죽음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으며, 이후 내각 책임제·양원제의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1961년정치🎖️ 윤보선 대통령

5·16 군사 정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통해 군정을 실시한 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이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했다.

1972년 7월정치🎖️ 박정희 대통령

7·4 남북 공동 성명

남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통일의 3대 원칙(자주·평화·민족 대단결)에 합의하고 이를 동시에 발표했다. 남북 조절 위원회가 설치되었으나, 남북 모두 이를 독재 체제(유신·유일 체제) 강화에 이용했다는 한계가 있다.

1972년 10월정치🎖️ 박정희 대통령

유신 헌법 제정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제정한 헌법으로 제4공화국이 출범했다. 대통령 간선제(통일 주체 국민 회의), 임기 6년·중임 제한 철폐, 국회의원 1/3 임명권, 긴급 조치권 등으로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한 권위주의 체제였다.

1979년정치🎖️ 박정희 대통령

부마 민주 항쟁 · 10·26 사태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부산·마산에서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그 처리를 둘러싼 정권 내부의 갈등 속에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유신 체제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1980년정치🎖️ 최규하 대통령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전두환)의 계엄 확대와 민주화 요구 탄압에 맞서 광주 시민·학생이 일으킨 민주화 운동.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을 조직해 저항했다.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87년정치🎖️ 전두환 대통령

6월 민주 항쟁 · 직선제 개헌

박종철 고문치사와 4·13 호헌 조치, 이한열 최루탄 피격에 분노한 시민이 전국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일으킨 민주 항쟁. 그 결과 6·29 민주화 선언으로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현행 헌법)이 이루어졌다.

1988년대외관계🎖️ 노태우 대통령

서울 올림픽 개최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어 동서 진영이 대거 참가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높였으며, 이후 북방 외교(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과 수교) 추진의 배경이 되었다.

1991년정치🎖️ 노태우 대통령

남북 기본 합의서 · 유엔 동시 가입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상호 체제 인정·상호 불가침·교류 협력을 규정한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가 아닌 특수 관계'로 규정했으며,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도 함께 이루어졌다.

1997년경제🎖️ 김영삼 대통령

외환 위기 (IMF 구제 금융)

외환 부족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강도 높은 구조 조정과 금 모으기 운동 등 국민적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2001년 지원금을 조기 상환했다.

2000년정치🎖️ 김대중 대통령

6·15 남북 공동 선언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햇볕 정책) 속에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이 평양에서 열려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후 개성 공단 조성, 이산가족 상봉, 경의선 복원 등 남북 교류가 활발해졌다.